■ 평생 가는 학생 시절 봉사활동 습관
외국에선 보편화 돼 있는 학생 봉사활동이 국내에 제도적으로 도입된 건 10년 안팎이다. 봉사활동이 점수 채우기와 관련하여 이상하게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그 근본취지는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할 것 같다. 학생 때 독서 습관이 평생 가듯이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에 “함께 나눔”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오블리제) 정신”이 미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경기도 광주에서 조용히 활동하는 자원봉사자 한천수 씨는 봉사활동 정신과 습관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한다.
■ 봉사로 시작되는 하루 일상
광주의 “선한이웃봉사대” 회원은 50여 명 된다. 그 중, 10여 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그 맨 앞에 한천수 씨가 있다.
한 씨는 오랜 공직생활에서 은퇴한 후, 2002년 아내가 다니던 평화교회에 나가면서 봉사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먼저, 광주 중심가를 흐르는 경안천 살리기에 나섰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영역을 넓혀 장애자 돕기, 독거노인 돕기, 어려운 가정 집 고쳐주기 등으로 손을 댔다.
이제는 그의 하루 일과에서 봉사를 생략한 일상이란 상상할 수 없다. 그의 인생은 오로지 남을 위해 사는 것처럼 돼 버렸다. 아침이면 광주시 봉사단체 집결지인 “경안천살리기 운동본부”로 출근하다시피 한다. 생계수단인 광고업은 뒷전이다.
■ 타인을 위한 삶과 보람
경안천 정화활동에는 2002년부터 연인원 1440명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쓰레기를 약 40여 톤이나 수거했다. 한 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였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신문, 고철, 파지를 수거하여 03년부터 80, 60, 70, 80, 150만 원씩 하여 5년 동안 440만 원을 봉사활동 기금으로 만들었다. 작년 7월 평화교회에서 1톤 트럭을 기증받은 후로는 기동성이 생기는 바람에 기금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해마다 계획된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장애우와 함께 여행을 했고(약 70여 명씩 참여), 사랑의 집수리를 한 채씩 했으며, 독거노인을 위로 방문하여 김장김치·쌀 · 가래떡 등을 선물했다. 06년 7월에는 강원도 홍천에 수해복구 현장에도 다녀왔다.
■ 이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한 씨는 항상 겸손하고 자신의 업적을 겉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강 릉 경포대 여행 중에 “TV에서만 보던 바다를 실제로 보니 너무나 좋았다”는 장애우의 말에 깊이 감동받았고, ‘사랑의 집수리’가 완성돼갈 무렵 운명을 달리하신 한 노인의 죽음을 잊지 못한다. 그의 사랑으로 가득한 그런 마음은 이 사회를 밝히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될 것이다.
한천수 씨 같은 분이 있으므로 하여 우리 사회는 행복하다.
“나는 교직에서 은퇴하면 학생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할 겁니다. 우리 교사들은 나라에서 월급 받고 연금까지 받습니다. 나중에 남들을 위한 삶을 살면 보람될 것 같아요.” 문득, 어느 C 교감선생님의 말씀이 귓전을 맴돈다.